연도별산행기록/2007년&이전기록

앵자봉 遊山記

류산(遊山) 2007. 11. 27. 14:50

♣ 아름다운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산세를 가진 앵자봉(667m)은 천주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산이다.  

앵자봉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되었고, 지금은 앵자봉 일원이 천주교 성역 순례길로 지정되어 있다.

앵자봉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초기에  천주교 교인들이 숨어 살았을 만큼 산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심산  유곡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는 산이다.

천진암 (한국 천주교 발상지)
앵자봉 일원에는 옛날 사찰이 8곳이나 있었다 전해진다.

이곳은 200여 년 전부터 양평쪽에서 움텄던 실학파의 영향으로 사찰 모두가 불교와는 관계 없이 선비들이 드나들며 과거 공부를 했다고 한다.  

1777년(정유년) 추운 겨울철 이벽(李檗)은 앵자봉 서쪽 분지에 있던 암자에 도착해 학자들과 더불어 10여 일간 천주교 교리강학을 했다.

 이즈음 이 강학에는 권철신, 정약전, 정약용, 이승훈 등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벽은 이들과 함께 천문, 지리, 철학, 수학 등 실학을 강의하면서 천학(天學)을 탐구하며 신앙의 싹을 키웠다.

서양식 월력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이벽은 매월 음력 7·14·21·28일에 천주의 날로 정하고,

천주공경가와 십계명, 성교 요지 등을 지어 부르면서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이끌어 나갔다.  

이러한 강학회는 5~7년간 계속됐다. 1783년 이벽은 천주교로 개종한 이승훈을 북경에 파견해 1784년 2월에 영세를 받고 오게 했다.

 이 때 이승훈은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한양으로 자리를 옮긴 이벽은 자기 집을 임시 성당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들어갔다.

 1785년 봄부터는 지금의 서울 명동성당 자리인 명례방에 사는 김범우(金範禹) 집에서 집회를 갖게 됐다.

입교자가 늘고 천학이 백성들에게 널리 퍼지자 1785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됐다.

천주교 전파에 앞장섰던 이벽은 집안에 감금상태로 기도와 묵상을 하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그해 31세를 일기로 순교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천진암 성지 한가운데에 조성된 3만여 평 대지 위에는 100년에 걸쳐 지을 기념성당과 박물관 등이 들어선다.

현재 성지 안에는 수녀원과 천주교 교회사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벽 등이 묻힌 천주교 창립 선조 묘역과 20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천진암(天眞菴)은 본래 작은 암자로 옛터만 남아 있다.

[한국의 산천]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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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 행 일 자 : 2007. 11. 27

 

   2. 산 행 자     : 류산, 서** (2명)

 

   3. 산 행 구 간 :   천진암성지입구 - 소리봉 - 박석고개 - 앵자봉정상 - 헬기장 - 천진암성지 - 성지입구

                          - 차량 이용에 따른 원점 회귀 산행

 

   4. 산 행 시 간 :  (총 4시간50분 - 시간 제약 없이 쉬어가는 산행)